유빈이 사는 법

낯선 환경 적응기

남궁Namgung 2009. 6. 10. 02:27

나를 아는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내가 먼저 나서서 말을 걸고, 살갑게 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리고, 낯선 자리나 모임에 가서도 그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르던 사람과 일단 친해지거나, 낯선 장소나 상황에 일단 익숙해지면, 남들과 비슷하게 혹은 남들보다 더 활발하게 변한다. 

 

그래서, "회사"를 다닐때도 부서를 옮기면 새로운 부서 사람이나 분위기의 적응기에는 아주 말이 적고, "내성적"으로 변한다. 그러다가 일주일 혹은 열흘 정도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아주 "외향적"으로 변하는 편이다. 

 

때로는 이런 나의 성격 (나는 천성이라고 생각한다)이 나 스스로도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그나마 많이 나아진 편이고, 앞으로도 더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내 아들 딸들이 나의 그런점을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신기하면서도 그런 닮음이 아주 못마땅할 때가 많다. 집에 손님이 오시거나, 다른 집에 놀러가면 몇번 본 분들인데도 고개숙여 하는 인사는 커녕 나나 제 엄마 뒤에 숨기 예사다. 그래서 모르시는 분들이 보시면 애들 버릇없이 키웠다고 생각하실까봐 무안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유빈이는 처음 여기에 와서 작년 여름에 킨더를 처음 들어갈 때도 그랬다. 한국에 있었어도 처음 유치원에 들어갈때는 분명 징징대고 했었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1주일을 울며 들어가고, 나나 제 엄마나 교실에 같이 들어가야 했을때도 있었다. 그러던 놈이, 한달 두달 지나면서 주말에도 킨더에 가고 싶다고 하고, 나중에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가끔 친구들과 노는 것을 보면 아주 적극적으로 변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어제부터 새로운 환경에 "투입"되었다. 이곳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섬머 프로그램이 어제부터 6주간 시작되었다. 이곳 학교 교육청에 속한 초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원하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열리는 장소도 학군 내 고등학교에서 한다고 하고, 참여하는 학생들도 각 학교에서 오기 때문에 다시 낯선 환경이 되었다. 물론 킨더에 다니던 애들 중 일부가 참여하기에 낯익은 얼굴들도 있겠지만,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거의 새로운 선생님들이고, 내용도 다르기 때문에 적응에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여기서 좀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태워서 보내는데,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버스를 안 타려고 한다. 그러다가 킨더에 같이 다니던 애가 타니 그때서야 할수 없이 따라서 차를 타고 갔다.

 

다행, 어제 다녀온 얘기를 잠시 들어 보니 그럭저럭 할만한가 보다. 작년만 해도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 그리고 우리 말이 아닌 말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낯설음이 더했을텐데, 그래도 이번에는 웬만큼 말도 알아 들을 수 있고 해서 적응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은 듯 싶다.

 

오늘도 차를 탈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을, 계속 버릇이 될까봐 다른 친구와 함께 타라고 했더니, 머뭇거리다가 그런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좀 짠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혀 다른 나라에 와서, 전혀 다른 사람과 문화, 언어 속에서 적응해 가는 것이 어른도 쉽지 않은데, 애들은 얼마나 더 하겠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렇게 잘 적응해 주는 점이 아주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