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말로 하고, 글로 하지 말라
내가 좋아하는 올드 팝송 중에 조지 베이커 실렉션 (George Baker Selection)의 I've been away too long 이란 노래가 있다. 어릴 적 본 텔레비젼에서 당시 최고 스타 중의 한 명이었던 김완선이 피아노를 치며 (사실 실제로 피아노를 쳤는지 시늉만 냈는지는 모른다) 부르는 노래가 너무 인상 깊었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I've been away too long'이었다.
그때, 그러니까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이종환의 디스크 쇼'라는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워낙 어렸을때라서 라디오를 진행할 때는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 라디오 진행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때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이름의 테이프가 많이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산 것도 한두개 되고, 주로 누나와 형이 갖고 있던 테이프를 많이 들었다.
팝송이 쭉... 흘러나오면 그 가사를 번역한 것을 이종환씨가 그대로 읽어 더빙 시킨 테이프였는데, 당시에는 아주 독특하고 그럴싸한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좀 갸우뚱 거려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일듯 싶다.
아무튼, I've been away too long이라는 팝송도 그 중 하나였다. How can I say to you, I love somebody new... 라고 시작되는 노래인데, 지금은 일부 가사를 잊기는 했지만, 한때는 노래방 화면을 안봐도 다 부를 정도였다. (가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그런데, 나중에 이종환씨가 한 인터뷰를 듣고 놀랬던 적이 있다. 바로 이종환씨가 당시 아주 인기가 높았던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기가 유행시켰던 노래도 꽤 된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DJ를 하면서 선곡을 해서, 노래를 틀어 주는데, 이종환씨가 듣기에 좋은 노래, 자기에게 좋은 노래인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유행시키고 싶은 노래는 라디오에서 추천하고 많이 틀어주어서 청취자들에게 많이 노출시킴으로 인해 유행된 적이 꽤 있다는 것이다.
흔히 팝 발라드라 불리는 노래,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활동하는 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노래들 중에 특히 이종환씨의 '영향력'이 미친 노래가 꽤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느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취향을 전파의 힘을 빌어 의도적으로 유행시켰다고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직 사회를 안다고 자신할 수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발견한다고 느끼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신문과 방송 등 이른 바 '언론'의 힘이 바로 그것이다. 좋은 글쓰기, 논리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신문, 특히 신문 사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 부터 있어왔고, 그래서 나도 유력 신문이라 부르는 몇몇 신문들을 마치 모든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생각하고 읽어던 적이 있다.
대문짝하게 실린 기사는 정말 중요한 기사로 생각하고, 작게 실린 기사는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며, 사설에서 비판한 것들은 정말 비판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 이런저런 경로로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손석춘씨의 '신문 읽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는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언론관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마치 이종환씨가 좋아하는 음악, 이종환씨가 생각하기에 작품성이 있거나 유행될 가치가 있는 음악들을 자주 방송에 틀어서 유행시키듯, 신문이나 방송사에서 걸러진 정보들이 '뉴스' 혹은 '톱뉴스' 등으로 포장되어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무리 대형 사건이더라도, 아무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중요성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성이 있더라도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채택'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알려지지 않고, 따라서 건설적인 비판이나 대책 등의 마련없이 묻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힘 있거나 방송 신문사를 움직여 그런 정보를 우리 사회에 퍼지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뉴스와 정보 등이 왜곡되거나 과장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록, 이런 현실을 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 후로는 신문과 방송을 보더라도 그들이 전하는 내용을 곧이 곧대로 수용하지는 않아야 함을 알게 되었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이종환씨의 선곡과 방송은 사회적으로 그리 큰 해악을 가져온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 방송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고 읽거나 시청하지 않으면, 이미 기자와 편집자, 혹은 경우에 따라 사주에 의해서 (때로는 왜곡되게) 걸러진 정보만을 접하게 된다.
그러니, 하나만 맹신하지 않고, 이런저런 다양한 신문사와 방송사를 읽고 보고, 직접 당사자들이나 잘 알고 있는 시민,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단체에서도 정보를 일부러 찾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글을 쓰거나 그리는 사람들 자체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뭐,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하고, 좀더 넓게 정보를 접하고,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있으니, 언론 종사자들이 일반 시민보다는 더 냉철하고 치밀하게 문제를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과 그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알 수 있다.
우리 국민이 노무현씨를 국민적 차원에서 사면키로 하는 데는 한 가지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는'것이다. 그래서 그가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가진 일체의 움직임에 연루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다. 그가 또다른 어떤 계기에 그 어떤 사건을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서 그의 번잡한 언변을 늘어놓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가 국민 앞에 자신의 마지막 성실성을 보이려면, 그래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국민의 용서를 받고 싶다면 검찰에 출두하는 방법에서도 장난을 치거나 사안을 이벤트화(化)하지 말 것이며, 검찰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도 보다 겸손하고 피의자다워야 한다. 더이상 '노무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2009. 4. 27.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중)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26/2009042600833.html
글 뿐 아니라, 그림도 그렇다. 신랄한 비판을 넘어, 아니 정도를 넘어선 비아냥과 조소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과연 보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함인지 의아스러울 정도이어서, 가끔은 글을 쓰거나 그린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까지 들 정도였다.
(2009. 4. 24. 조선일보 만평)
(2009. 5. 7. 조선일보 만평)
(2009. 5. 15. 조선일보 만평)
일전에 어디선가 읽은 글 중에 "욕은 말로 하고, 글로 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욕을 되도록이면 안하는 것이 좋겠지만, 정 해야된다면 오래 오래 남는 글로 하지 말고 말로 하라는 말이다. 상처를 주더라도 글로 된 것은 더 오래 오래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신문사들이 두고 두고 욕을 먹는 것도 결국은 한 시대에서 그들이 어떤 글을 썼는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나도 별것 아닌 이곳에 끄적거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 항상 가슴에 담으려고 하는 생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수 있다. 꼭 정치인뿐만이 아니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뭐가 좀 불합리하고, 불공평한지 따져 보는 것만으로도 한발짝 더 나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