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빠 도숭했네...
지금 우리 집에는 공부하는 사람이 둘이다. 하나는 나고, 다른 하나는 아들 유빈.
차이점은 아빠는 아직도 힘들게, 가까스로 버티면서, 얘들말로 스트러글링(struggling) 하면서 다행 서바이빙(surviving)은 하고 있지만, 유빈은 주말에도 킨더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대단히 잘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첫 1주가 최악이어서 가기 싫다고 하고, 학교 앞에서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제 아빠, 엄마를 붙잡고 울고 했었는데, 그 다음주부터는 그래도 싫은 표정을 하면서도 제 발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제 아빠 엄마를 돌아보지 않더니 이제는 갔다오면 너무 재미있다는 말을 제 스스로도 자주 하는 편이다.
부모된 입장으로서 이런 변화에 기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잘 적응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 일전에는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대화 창구로 쓰는 노트에 킨더 담임 선생님이신 미세스 카터가 간혹 유빈이가 학교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나무 블럭을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등의 메시지가 오기도 했었다. 얼마나 선생님이 말을 해도 듣지 않았으면 이렇게 써서 보냈을까 싶어서 유빈에게 신신 당부를 하기도 했었는데, 다행 요즘에는 그런 "요구사항"은 없어졌다.
오늘은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는 컨퍼런스 데이(Conference Day)였다. 학교 수업은 없는 대신, 학부모와 교사가 학생들 그간의 진도를 서로 평가도 하고, 문의하고, 답하는 날이다. 신청 날짜에 따라 지난 주 금요일에도 일부 있었고, 우리 집은 오늘 9시부터 만나기로 되어 있어 학교로 갔다.
담임선생님이신 미세스 카터와 만나 유빈이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무래도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아직도 언어가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그 문제로 인해 다른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었다.
미세스 카터는 (으례 다른 모든 부모에게도 다 그러겠지만) 유빈이가 아주 잘 적응하고 있고, 아주 똑똑하다고 칭찬을 계속 해주신다. (제 아빠 닮아서 그렇습니다, 속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언어 문제도 조금씩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서 킨더에서도 친구들과 놀때는 영어를 곧잘 쓴다고 한다. 그래봐야 고, 플레이, 런, 스톱 같은 아주 단순한 영어겠지만 그래도 아주 안심되는 대목이다. 알파벳이나 숫자를 읽는것도 다른 애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고, 인상적인 것은 무슨 발음을 들으면 영어로 제법 흉내내서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물을 애니멀이라고 선생님이 발음했다고 하면 철자가 그대로 다 맞지는 않더라도 AIMAL과 같이 대략 비슷하게는 쓴다고 하면서 유빈이가 킨더에서 쓴 것을 보여준다.
집에서도 간혹 그런 적은 있는데, 학교에서 쓴 것 보여주는데, 정말 신기하게 그런 식으로 쓴 것이 꽤 된다. (역시, 제 아빠 닮았군...)
아무튼,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 듯 싶어, 이것 저것 물어 보았는데, 다른 또래의 애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고, 친구들과도 아주 잘 어울리고 인기도 많아서, 얼마전 유빈이가 학교에 가지 못했던 날에는 유빈이가 없다고 찾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하면서, 유빈이의 존재를 친구들이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 사투리로 표현하면) 제 아빠 도숭했네...
애들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애들의 적응력은 무시 못하겠다. 저 놈이 저러다가 2, 3년 후에는 내 영어 발음을 듣고 창피하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영어로 말하지 말라고 할 것 아닌가... 그래도 그럴 날이면 뿌듯할 것이다. 그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집에서도 우리 말하기와 쓰기를 부지런히 가르쳐서 바이링귀얼(Bilingual)이라는 "도구"를 가질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아침에 학교에서 나오면서 아주 뿌듯하고, 대견했다. 집에서 소리 지른다고, 정리 잘 안한다고, 마구 뛰어다닌다고 자주 혼내는데, 사실은 아빠보다 더 잘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리고, 더 열심히 배우도록 지원해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