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는 얘기

백열 전구 두개

남궁Namgung 2008. 7. 18. 20:05

 

아직도 영국에 처음 도착해서 묵었던 숙소에 대한 첫 인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엘름브룩하우스(Elmbrook House).  단둘이었지만 꽤나 많은 살림 짐과 함께 떠났기에 히드로 공항에서 그 짐들을 카트에 싣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세시간 가량을 달려 엑시터에 도착했었다.

 

깜깜한데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는지라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분위기는 스산했다.

 

택시를 타고 주소를 말해서, 학교 기숙사였던 그 엘름브룩 하우스 2층으로 들어가서 불을 켰는데...

 

천장에 백열전구 두개가 달랑 달려 있었다. 

 

그때까지 난 한국에서 백열전구를 본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고, '영국인데...'라는 긍정적 선입견때문에 더더욱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방안 한쪽엔 세면대, 다른 한쪽엔 널찍한 책상...

(*하도 신기해서 당시에 사진을 찍어 놓기도 했었는데, 다시 찾아 보니 없다!)

 

 

거창한 표현같아 좀 쓰기 그렇지만, 외국으로 나가서 경험하는 일,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일은 방문을 열고 우리와 다른 모양의 스위치를 켰을때 천장에 붙어 있는 백열전구 두개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가면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니와,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 가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출장을 가고, 공부를 하러 가고 있기 때문에 어설프게 외국이 이렇네, 저렇네 할 필요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지만,

 

앞서 말한 백열전구와의 만남 같은 경험들이 나를 자꾸 외국으로 눈 돌리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나는 다시 미국으로 나간다.

 

영국에서 돌아 온 후로 줄 곧 끝까지 마치지 못한 학위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천천히 준비를 했고, 결실이라면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성과를 갖게 되어 분명 기쁘다.

 

하지만 연세 드신 분께는 젊은 나이이지만,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작지 않는 나이에, 그것도 예전과 달리 부양가족에 둘을 더 보태서 나가게 되는 현실은 기쁨 속에서도 또 다른 도전을 각오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그 넓은 히드로 공항에서 눈이 휘둥그레 해지고, 그 소박해 보이는 기숙사에서 또 다시 의아해했던 것 처럼 나의 저 어린 애들이 비슷한 경험을 통해 많은 생각을 했으면 하는 부모로서의 소박한 바램이 있지만, 저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저 길 잃어 버리지 않게 잘 끌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찰 듯 하다.

 

아무튼 이렇게 나의 미국행이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나를 위한 내 삶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혹여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간 나의 준비를 앞으로 조금씩 올려 보려 한다.